사랑, 그곳의 이름입니다.
‘이번이 세 번째구나. 마지막이…될 지도 모르니까 더 열심히 하자.’
산소망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주 굳게 다짐하던 내 생각이다. 나는 인성여자중학교에서 이곳 산소망으로 여름이면 하기봉사를 하러 온 지 3년 째 되었다. 그건 나와 수연이 뿐이었다. 혹시나 됐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에서 신청했는데 또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쩐지 산소망과 나는 인연이 깊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괜히 정신적 선배 같기도 한 자랑스러운 마음이 솟았다. 선생님도 그걸 아셨는지, 나는 인성여중 하기봉사대의 대장이 되었다.
일곱 시 반에 동인천역을 출발해 신도림 역이 열차가 도착하자, 아니나 다를까 박승부 회원님이 “안녕하세요!”하는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우리 길을 안내해 주시러 열차에 탑승하셨다. 박승부 회원님의 안내는 내가 맡게 되었다. 많이 낯설어 하고 박승부 회원님의 우렁찬 목소리에 적응이 안 된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은 어쩔 줄 몰라 하셨지만, 나야 뭐 3년 동안 뵌 분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최선을 다해 안내해 드려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신길 역에서 5호선 광나루 역으로 갈아타고, 광나루에서 광장 교회까지 1년 전 익숙한 그 길이 내 앞에 펼쳐졌을 때, 기분이 참 묘했다. 내년에도 다시 이 길을 걷고 싶고, 작년에도 이 길을 1년 뒤 다시 걸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다만 그 때와 다른 점은 난 이미 2년의 경험을 쌓았다는 점이고, 내 옆에는 박승부 회원님이 계시다는 점이었다.
광장교회 광장에서 모이자 부슬부슬 내리는 이슬비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우린 광장교회 마당에서 주스와 빵을 받아서 얼른 먹어치웠다. 빵을 다 먹자, 우린 운동장으로 올라가 각자 나눠진 버스에 탑승했다. 그 전에, 산소망 회원님들을 만나서 버스에 태워드리는 것 먼저 하고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곳에서 나는 운명적인 만남을 했다. 작년에 나와 짝이셨던 박정희 집사님과의 만남이었다. 너무 큰 내 모습 때문인지, 슬프게도 더 어두워지신 눈 때문인지 그분은 처음엔 날 간사님인 줄 아시고 박카스를 주시려고 하셨다가 금세 나라는 것을 아셨다. 어쨌든 그 분 얼굴을 뵙자 굉장히 반갑고 기쁜 마음과 함께, 그동안 내가 전화로 인사도 충분히 못 드린 것이 못내 죄송하기도 했다. 그 후 버스 두 대와 봉고차에 나눠 탄 우린 장장 3~40분을 달려 산소망의 모든 회원님들이 모여 계신 유스호스텔 1층 대강당에 집결했다.
대강당에 딱 들어가자, 역시나 작년과 재작년에 오셨던 분들의 얼굴들이 가장 먼저 보였다.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정의여고와 아천동 교회에서 온 언니오빠들의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나만 이곳에 자주 왔었던 것은 아니군,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또 한 명의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작년에 졸업한 우리 학교의 선배 언니이자, 내 기억으로 내가 1학년 때부터 항상 산소망에 참가했었던 현 박문여고 언니를 만난 것이었다. 그 언니는 전화로 이걸 신청했다며 우리들에게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나는 인성여자중학교를 졸업하면 못 오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그런 방법도 있었구나! 하는 아주 어리석은 깨달음과 함께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곧이어 짝이 정해지기 시작했고,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쩐지 아까부터 계속 박정희 집사님과 만난 것이 우연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필연이었을까? 그 때, 목사님이 불러주시는 나의 이름이 들렸고, 곧이어 운명처럼 박정희 집사님의 성함도 불려졌다. 나는 반갑게 박정희 집사님께 달려갔고, 그분도 나를 아주 살갑게 대해 주셨다. 내가 오기 전 이곳에 또 오게 되었다고 연락을 드린 적이 있는데, 그걸 받으시고 사실 목사님께 넌지시 나와 짝을 맺어 달라 부탁하신 적이 있다고 하시며 내 손을 꽉 잡아 주셨다.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어쨌든 우여곡절의 짝 맺는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바로 식사를 했다. 그 후 방 배정을 받아 숙소로 올라갔는데, 작년에 같은 방이셨던 이윤자 집사님도 또 같은 방이 되셨다. 문득 정말 인연은 돌고 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십 분 뒤 구룡 계곡에 출발하게 되자, 무릎이 안 좋으신 집사님과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넘어 우여곡절 끝에 구룡 계곡에 도착했다. 힘들긴 했지만 이 코스의 좋은 점은 봉사자의 봉사 실력을 가늠함과 동시에 회원님과의 이런 저런 담소로 어색한 사이를 풀 수 있는 곳이라는 거다. 나와 집사님 역시 그곳을 올라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구룡 계곡에서도 발을 담그며 시원한 물놀이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 식사와 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최대한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뒤 치악산 자연휴양림에 가게 된 우리는 너무 깨끗하고 맑은 숲길과 산공기를 마시며 정말 너무 좋은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숲과 나무의 자연 향기가 도시의 공해에 찌들어 지쳐 있던 내 몸 구석구석 깨끗이 정화시켜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솔길 같은 마냥 아름답기만 한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회원님들과의 정담과 사랑이 절실히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한 번도 오지 않은 곳인데, 아주 자주 온 것 같고, 앞으로 자주 올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연휴양코스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우린 명상의 시간, 일명 자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난 주로 조용히 음악을 듣거나 아이들이 모인 방을 한 번 왔다 갔다 할 뿐, 편안히 방에서 쉬면서 회원님들께 봉사해 드리는 편을 선택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우리 방 회원분들께 사랑을 많이 받는 편이었다. 그리고 나도 나를 친손녀처럼 칭찬해 주시고 아껴 주시는 그 분들이 너무 좋았고, 감사했다. 새삼 하나님께 또 깊은 감사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기나긴 명상의 시간이 끝나자 우린 팀 대항전이라는 것을 하며, 각기 다른 지역팀끼리 ‘대결, 찬양곡’이나 ‘이구동성’문제 등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그중 나는 이구동성의 사자성어 문제에서 두 문제나 맞혔다. 어쩐지 팀의 발전에 기여한 듯한 뿌듯함에 절로 어깨가 들썩거려졌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예배와 더불어 학교별 찬양시간과 열린 음악회를 맞게 되었다. 우리 학교의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의 노래와 열린 음악회의 진중하거나 신나는 찬양이 아주 뜻 깊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신났던 둘쨋날 밤을 보내고, 마지막 날 아침에는 우리 방의 이윤자 집사님, 권사님, 박정희 집사님, 다른 방의 김홍기 회원님, 전도사님과 함께 아침 산책을 나갔다. 그분들과 따라 나서 동행한 봉사자는 오직 나뿐이었다. 우린 아침 공기를 상쾌히 마시며 언덕길을 올라가 위치한 공터의 운동 기구와 나지막한 산길을 걸었다. 모든 게 조용했지만, 또 모든 게 살아있는 신선한 아침 산책이었다.
산책 후,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싸서 대강당에서 마지막으로 경품 추첨과 순위 발표가 시작되었다. 우리 동대문 지역은 3위에 입상했다. 3위에 그쳤지만, 나로서는 팀 입상이 처음이었기에 참 기뻤다. 마지막 간식을 받음을 끝으로, 우리는 회원님들과 헤어졌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버스에 탑승 후 3-40분을 다시 달려 광나루 역에 도착하면서 나는 박정희 집사님과의 연락을 약속하며 다른 모든 회원분들과의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했다. 대장인 나와 내 친구인 어진이는 인천에 사시는 박정인 집사님을 데려다 드렸다. 그 분은 입담이 너무 재미있으신 분이어서, 그 분의 화려한 입담 속에 하마터면 수원행 열차를 타고 잘못 갈 뻔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또 다시 그분을 무사히 지하철의 안내원 분께 맡겨드리고, 인천행 열차를 타고 집으로 가게 되었다.
밥 먹기 전 외우는 영혼의 양식, 너무나 열렬한 열기 속의 예배 분위기 모두 너무 신앙적으로 좋은 시간이었고 복된 기회였다. 우선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축복과 선물을 받았는지 깨닫게 되어 너무 감사했고, 한마디로 ‘사랑’ 의 집결지인 이곳에 정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더욱 알찬 시간들이었다. 한 시간, 1분 1초가 너무 기억에 뚜렷이 선명한 좋은 시간이었던지라 좋은 점과 느낀 점을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다만 아쉬울 따름이다. 내게 이런 기회를 세 번째 내려주신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고, 날 뽑아주신 선생님들께도 큰 감사를 드린다.
2박 3일 간의 짧았던 소중한 시간, ‘산소망 선교회 봉사활동’은 내게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가르쳐 준 ‘사랑의 집결지’였다고 할 수 있겠다!